
아이를 키우며 책육아와 아빠(엄마)표 영어, 잠수네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이가 2~3살에 된 이후부터다. 그전까진 무조건 놀아주고, 밥 잘 먹이고, 낮잠 잘 재우는 게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슬슬 언어 발달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랄지, 어떤 자극을 더해줘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 자연스레 책육아를 알게 되었고, 영어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책육아는 말 그대로 ‘책으로 키운다’는 의미일 것이다. 장난감보다 책이 우선인 환경, 리모컨 대신 그림책을 들고 오는 아이, 집안 곳곳에 책이 있어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분위기.
많은 부모들이 책육아의 가치를 믿고 실천 중이다. 나 역시 아이가 책과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거실 한 켠에 책장을 놓고, 식탁이 집안을 집안의 중심에 두고, 잠자리 독서는 꼭 한 시간씩 가지는 습관을 들였다.
영어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책육아가 습관의 문제이고 환경 중심이라면, 엄마표 영어는 부모의 개입이 더 많이 필요했다. 아이가 영어에 친숙해지도록 읽어주고, 영상과 음원을 틀어서 보여주고, 반복시켜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을 ‘잠수네 영어’에서 접했고, 실천했다.
잠수네 영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핵심은 단순하다. 영어책을 꾸준히 읽고, 영어 소리를 많이 들려주는 것. 이 단순한 것을 꾸준히 지켜가는 것. 이게 전부다.
잠수네 방법이 잘 되는 집은 무엇보다 부모의 의지가 확고하다. 나는 이 원칙을 최대한 지키려 노력했다. 너무 명료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원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치원 시절에 하루에 몇 권씩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조금씩 영어 애니메이션을 흘려듣기용으로 틀어놓았다. 이 시기 아이는 넘버블럭스, 옥토넛을 정말 많이 봤다. 비싼 돈 주고 샀던 월팸도 도움이 되긴 했다. 그래도 월팸보다 넘버블럭스와 옥토넛이 아이의 영어 세계를 만들어 준 컨텐츠인 거 같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육아를 한다면서 TV를 이렇게 켜둬도 되는 걸까?”
많은 엄마들이 책육아를 하며 TV는 안 보게 하려고 애쓴다. 실제로 육아 커뮤니티만 가도 “우리 집엔 TV가 없어요”라는 말이 일종의 자랑처럼 들릴 때가 있다. 마치 TV를 없애야 진정한 책육아가 가능하다는 듯한 분위기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TV는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교육적인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기기다. 예전처럼 TV가 단순히 예능과 드라마를 보는 수동적 매체가 아니라, 지금의 스마트 TV는 다양한 앱과 기능을 갖춘 일종의 ‘확장된 컴퓨터’다.
특히 요즘 나오는 이동형 TV나 슬림형 스마트 TV는 아이가 책을 읽는 거실 공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영어 소리를 노출시키는 훌륭한 보조 도구가 되어준다.
나는 거실을 아이 중심의 책 공간으로 꾸미되, 한쪽에 TV를 고정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만 꺼내서 사용하는 이동형 TV를 활용했고, 콘텐츠도 미리 고른 영어 영상으로만 제한했다. 이렇게 하니 아이가 책에 집중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영어 소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사실 아이가 아주 어릴 땐, 혼자 방 안에서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 초등학교를 넘어 중고등학생쯤 되어야 혼자 집중해서 공부하는 습관이 자리를 잡는다. 그전까진 부모의 관심과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거실 공부’를 추천한다. 식탁에서 함께 책을 읽고, 간단한 영어 학습도 같이하고, 리모컨을 눌러 잠깐의 영어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는 시간. 이런 과정 속에서 아이는 언어와 책, 그리고 영어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쌓게 된다.
TV는 책육아의 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잘 활용하면 책육아의 지평을 넓혀주는 매체다.
엄마표 영어를 하면서도 TV를 없애지 말자. 그 대신 TV의 ‘위치’와 ‘역할’을 재정의하면 된다. 거실의 중심이 아닌 한쪽에 두되, 학습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주자. 콘텐츠는 부모가 미리 선정해두고,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하자.
TV는 여전히 우리의 삶에 필요한 기기다. 단지 그 중심이 달라졌을 뿐이다.
책을 사랑하는 아이, 영어 소리에 귀가 트인 아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그런 아이를 키우는 데 TV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