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가 ‘말 언어 평가’ 검사를 받았다.
말을 못한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소통이 잘 안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거 같다는 아이 엄마의 걱정까지 평가를 받게 됐다. 그저 평범한 확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듣던 중 상담사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덧붙였다.
“전반적으로 정상이에요. 다만 굳이 꼽자면… 화용언어에 약간의 어려움이 보이네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화용언어? 사회성, 동문서답 이런 단어들이 섞인 상담 결과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화용언어’라는 단어를 다시 검색해 봤다. 그리고 나는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시 떠올랐다.

“뜬금없이 왜 그런 말을 하지?”
화용언어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다.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즉 사회적 상황에 맞는 표현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능력을 말한다고 한다.
10살도 안된 아이가 사회적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길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상담사의 판단은 그 나이대 아이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 아이에게 화용언어에 부족함이 있는 건 사실인 거 같다.
요즘 아이들은 또래와 어울리는 시간도 짧고,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다 보니 이런 사회적 언어 사용에 서툴 수 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도 때때로 이런 모습을 보였다.
- 친구가 말하고 있는데 끼어들거나 자기 이야기만 하거나
- 감정 표현이 조금 직설적이고 상대의 반응을 잘 살피지 않거나
- 대화 주제와는 조금 동떨어진 엉뚱한 말을 할 때가 있어서, 듣는 사람이 “어?” 하고 멈칫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말이 느려서 그런지 친구들과 소통이 잘 안될 때가 있어요.”
라는 예전 유치원 선생님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말이 느려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 보다는 진짜 소통이 안되는 성향이 있었던 것이다.
화용언어는 사회적 기술이다
전문가의 조언과 자료들을 살펴보며 깨달은 건, 화용언어는 훈련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이었다.
지능과는 큰 관련이 없고, 경험과 반복을 통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와의 일상 속 대화를 돌아보게 되었다.
“오늘 뭐 했어?”로 시작되는 대화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때 친구는 뭐라고 했어?”, “그럼 너는 뭐라고 했어?”, “그 말 듣고 어떤 기분이었어?”
이런 식의 대화가 훨씬 더 큰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린 질문을 하라는 건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열린 질문을 받아 본 적 없는 부모가 아이에게 그걸 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나부터 훈련을 해야 할 거 같다.
일상 속 실천: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
화용언어에 대해 알게 된 뒤, 나는 작은 실천 방법을 찾아봤다. 여기에 정리해 본다.
- 역할놀이
인형을 가지고 친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새로 전학 온 아이를 연기해 보기도 한다.
“안녕, 나 처음 왔어. 같이 놀아줄래?”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아이도 점차 자연스럽게 대사를 이어갈 것이다. - 감정 언어 나누기
책을 읽을 때 인물의 말투나 표정을 함께 이야기한다.
“이 친구는 화가 난 걸까? 왜 그랬을까?”
그렇게 말의 의미뿐 아니라, ‘상황과 감정’을 연결해보는 연습을 한다. - 칭찬과 피드백
누군가에게 예쁘게 말했을 때는 바로 칭찬해준다.
그리고 가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 나왔을 때는 부드럽게 말한다.
“그 말은 좀 거칠게 들릴 수도 있어. 이런 식으로 바꿔 말해보는 건 어때?” - 또래 관계 기회 만들기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의식적으로 만들어 본다.
실제 상황에서 부딪히고, 경험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성장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를 키우면서 “이건 고쳐야 해”라고 생각하기보다 “이 아이에게 조금 더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였다.
화용언어라는 낯선 단어를 통해 나는 아이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좀 더 귀 기울이게 되었고 내 말투와 반응 역시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10살도 안된 아이가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다. 그것을 부모가 발견했다. 지금 이 상황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모의 손길을 더하는 한 과정일 뿐이다.
괜찮다. 아이도 괜찮고, 부모도 괜찮다. 마음 편히 부족한 걸 채워나가면 된다.
혹시 여러분의 아이도 말은 잘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어색하거나
또래 관계에서 작은 갈등이 잦다면,
‘화용언어’라는 단어를 한 번 기억해 보시길 바란다.
그 속엔 아이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