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준석이 왜 똑똑해 보일까요? 왜 그에 대한 비호감이 많을까요? 대선을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글에서는 이준석의 화법이 왜 설득력 있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가 보편적인 호감을 얻지 못하는 지를 나름대로 풀어보겠습니다.

정치인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무엇일까요? 정책? 인품? 지지 기반? 그 모든 요소 위에 요즘 시대에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말’입니다. 누군가가 무엇을 말하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말하느냐’가 설득력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말과 정치인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이준석입니다. 방송에서 정치 평론으로 인지도를 높였고, 여러 선거에서 임팩트를 ‘말’을 무기로 남겼기 때문이에요.
이준석은 말을 잘합니다. 논리적이고, 간결하며,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토론이든 인터뷰든 그가 입을 열면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도 생깁니다. “왜 이렇게 말을 잘하는데도, 모두가 그를 좋아하지는 않을까?”
이준석의 말은 ‘논리’로 설득한다
이준석의 화법은 전형적인 미국식 말하기 구조를 따릅니다. 특히 하버드에서 학부를 마친 그의 배경은 그 말하기 방식에 분명한 영향을 줬습니다.
이준석은 주장(Point)을 먼저 밝히고, 그 이유(Reason)를 명확히 전달하며, 실제 사례(Example)로 뒷받침한 뒤, 다시 핵심을 정리해 반복(Point again)하는 스타일을 구사합니다.
이 방식은 PREP(P-Point, R-Reason, E-Example, P-Point again)이나 OREO(Opinion, Reason, Example, Opinion again)처럼 미국 교육에서 흔히 사용하는 구조입니다.
핵심이 뚜렷하고 반박이 어렵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듣는 사람은 그의 말을 ‘느낀다’기보다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평론가’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명확하고 빠르게 핵심을 전달한다
이준석의 말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설득합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에게 ‘속 시원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 주장이 명확하고,
- 근거가 논리적이며,
- 말에 여백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청년 정치가 보여주지 못했던 것은 시스템 설계 능력이다”라고 말한다면, 단지 비판에 머물지 않고 왜 그 시스템이 필요하며, 기존 정치 시스템의 어떤 구조가 이를 막아왔는 지를 풀어냅니다.
이는 단순한 주장이나 신념이 아닌, 논리적으로 연결된 사고의 흐름을 보여주는 방식이죠.
이런 스타일은 특히 2030 세대에게 강한 인상을 줍니다.
그들은 논리적 사고에 익숙하고, 감정보다 구조에 반응합니다. 이준석이 TV 토론이나 유튜브 라이브에서 MZ세대의 주목을 끌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왜 젊은 세대에게 이준석의 화법이 잘 통할까요? 쇼츠나 릴스를 즐기는 사람들은 빙빙 둘러 말하는 것보다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화법을 선호할 수밖에 없어요.
또한, 젊은 층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용어 선택이나 예시나 비유를 할 때 젊은 사람들도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점이 젊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준석의 무기입니다.
“틀린 말을 안 하니까, 더 짜증나”
하지만 이 방식은 모두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듣고 나면 기분이 나빠.”
“너무 따지듯 말하니까 정이 안 간다.”
“그 말이 맞는 건 알겠는데, 그걸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이것이 바로 이준석 화법의 한계입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관계 중심의 문화입니다.
논리가 아무리 명확해도, 말의 ‘톤’과 ‘맥락’,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식’이 함께 작동해야 설득력이 완성됩니다.
특히 기성세대에게는 ‘논리 이전에 예의’가 우선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PREP 방식은 주장과 반론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구조입니다. 이 말은 곧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갈등을 드러내기보다 ‘돌려 말하기’를 미덕으로 여겨온 문화가 존재합니다.
그러니 이준석의 화법은 설득력은 있지만, 듣는 사람을 ‘이기게 만드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논리만으로는 사람을 끌어안을 수 없다
결국, 이준석은 말을 ‘이기는 방식’으로 잘합니다. 하지만 정치는 ‘이기는 말’보다 ‘함께 가는 말’이 필요합니다.
PREP 방식은 말의 논리적 구조에는 강하지만, 감정을 어루만지는 데는 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갈등이 심화된 한국 정치 문화에서는 누군가가 논리적으로 100점을 받아도, 그 사람이 주는 인상이 60점이라면 그 말은 설득력이 반감될 수 있습니다.
마치며: 구조와 온기 사이에서
이준석의 말은 미국식 교육이 길러낸 ‘구조 있는 언어’의 결과물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정보화 사회에 적합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직 ‘맥락과 정서’라는 레이어를 필요로 합니다. 논리와 구조 위에 관계와 온기를 얹는 말하기. 어쩌면, 그 균형을 찾는 것이 지금 이준석에게 주어진 다음 과제일지도 모릅니다.